잡담

친구가 MBTI검사를 해 준 경험

메피카타츠 2023. 1. 26. 12:27

요즘에는 비교적 사그라들었지만, MBTI에 대한 열풍이 불었던 적이 있다.
MBTI는 간단하게 말하자면 성격 유형 검사로, 몇 가지 질문을 통해 16개의 유형 중 어떤 유형인지 알려주는 검사이다. 단, 문제점은 본인 스스로가 판단하여 응답을 하는 검사이다보니 본인이 생각하는 혹은 바라는 모습이 반영되기도 하고, 때에 따라 검사 결과가 바뀌기도 한다.

때문에 일부 사람들은 혈액형 성격설과 유사하다고 주장하거나 본인이 답변한 그대로 알려주는 의미없는 검사라고도 하기도 하는데,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16개의 유형은 모든 사람들을 담기에 턱없이 모자라지만, 경향을 파악하기에는 좋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MBTI를 해보면 본인의 MBTI에 관한 내용에 공감이 가고, 수긍이 가는 내용들이 상당히 많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내용을 읽다보면 뜻하지 않게 자신의 행동이나 생각 등을 이해하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모든 내용이 일치하지는 않을 수 있는데 이는 사람마다 생각하는 방식 등이 조금씩 다르고, 위에서 말했듯 이런 모든 것들을 16개의 유형에 담기란 어렵기 때문에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정확도는 조금 떨어질 수 있지만, 전체적인 경향을 파악하게 해주고 '나는 어떤 사람인가?' 라는 생각을 갖게 해줄 수 있는 재미있는 검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글은 이틀 전 새벽에 겪었던 일에 대해 기억하고 싶어서 기록하는 글이다. 친구들과 잡담을 하며 노는 도중, MBTI에 관한 얘기가 나왔다. 나를 포함해 총 3명이었는데, 나는 ENFP, 다른 두 명은 INFJ, ISTJ라고 했다. 그런데 MBTI는 결국 본인이 하는 검사니 본인이 원하는 모습이 나오는 것이 아니느냐? 하는 이야기가 나왔고, 그럼 우리가 서로의 MBTI를 해주자, 라는 이야기가 되었다. 1명의 검사마다 나머지 2명이 그간 지켜봐온 친구의 모습을 보며 느낀 점을 바탕으로 검사를 대신 해주는 방식이었다. 이 친구들과는 함께 지낸지 약 6년 정도 되었는데, 생각보다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점을 느끼게 되었다. 또,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대해 알 수 있었던,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유익한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처음엔 조금 가볍게 시작하게 된지라 처음 검사를 하게 된 친구는 문항 선택을 약간 장난스럽게 한 면도 있었다. 두 번째로 내 검사를 할 때도 마찬가지로 조금 장난스러운 분위기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3번째로 하게 된 친구가 진지하게 생각하고 답변해주었다. 그리고 나도 그 친구한테 똑같이 해 주었다. 그래서 첫 번째로 검사하게 된 친구한테는 약간 미안한 느낌도 든다.

아무튼, 첫 번째 친구는 INFJ였는데, 우리들의 검사 결과 ISFJ로 변경되었다. 그 친구는 조금 의아해보였는데, 아마 내 생각에도 INFJ가 조금 더 맞을 것 같다고 느꼈다.

아무튼, 이윽고 내 차례가 다가왔을 때 솔직히 별로 기대하진 않았다. '내 검사도 상당히 장난스럽게 하겠지?'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친구들 사이에서 상당히 장난스럽고 가볍게 행동하고, 1번째로 검사한 친구(앞으로 J라고 하겠다)는 물론이고 3번째로 검사한 친구(앞으로 B라고 하겠다)의 경우 나의 그런 점에 대해서 지적을 많이 했기 때문에 첫 번째 친구 질문을 보면서 '얘네들은 나를 이렇게 생각하겠지'라고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었기 때문에 내 검사를 하는 동안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서 조용히 있기로 했다. 그렇게 검사가 시작됐다.

검사를 시작 한 이후에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어떻게 나에 대해서 이렇게 잘 알지?' 라고 생각할 정도로 나의 모습을 잘 알고 있었다. 심지어는 나 스스로 잘못 생각하고 있던 부분도 정확하게 꿰뚫어보았다. 특히 B가 나에 대해서 놀라우리만치 잘 알고 있었는데, 이러이러한 모습이나 이러이러한 행동들을 봤을 때 얘는 이런 것 같다라고 얘기를 했는데, 듣고 보니 확실히 그랬다. 내가 검사를 했으면 가볍게 생각하고 반대쪽을 선택했을텐데, 이 친구의 말을 들어보니 확실히 이쪽이 더 맞는 것 같다고 생각한 것이 1~2문항정도 되었다. 이 과정에서 J보다는 B가 나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고 느꼈는데, B의 검사를 할 때 B도 J보다 내가 더 B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 같다고 얘기했다. 아마 J랑은 가볍게 놀거나 하는 일이 많지만 B랑은 철학 등 이런저런 토론을 하거나 논쟁 등을 많이 한 적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물론 내 생각과는 약간 다르게 생각한 문항도 있기는 했다. 특히 검사를 하는 과정에서 친구들이 도저히 판단하기 힘든 항목같은 경우는 내 의견을 말했다. 예를 들면 "사람들이 감정보다는 이성을 중시했다면 더 나은 세상이 되었으리라고 생각한다." 문항인데, 나는 감정과 이성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세상이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성을 중시하면 더 나은 세상이 되었으리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다른 두 친구는 최근에 자주 논란이 되는 감성떼법 등을 예시로 들며 세상은 조금 더 이성적일 필요가 있다고 했다.

검사 결과는 이전에 언급했듯 ENFP로 동일하게 나왔다. 꽤 기분이 좋았다. 내가 생각하는 나의 모습과 남에게 비춰지는 나의 모습이 일치한다는 얘기기 때문이다. 또 의외로 친구들이 나의 모습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것 같아 친구를 헛사귀진 않았구나 하는 생각도 좀 들었다. 그리고 검사가 끝난 뒤 B가 한 말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아, 잠깐 이 얘기를 하기 전에 먼저 해야 할 얘기가 있다. 자랑은 아니지만 나는 주변에서 곧잘 똑똑하다는 얘기를 듣곤 한다. 주로 좋은 아이디어를 내서 무언가를 개선할 때 그런 얘기를 종종 듣곤 한다. 하지만 출신 대학은 솔직히 별로 좋지 않다. 서울대학교 학생이 "나는 똑똑하다"라고 얘기해도 아무도 의문을 갖지 않겠지만, 나의 경우는 아마 "?" 라는 반응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공부라는 것은 앉아서 진득히 하다보면 충분히 이해하고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똑똑하다는 것은 자리에 앉아서 진득하게 공부할 수 있는 사람을 말하는 단어라고. B라는 친구는 그런 친구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범생이'를 떠올리면 딱 알맞은 이미지다. 생긴 것도 그렇고, 하는 행동도 얼추 맞다. 실제로 중학교 때는 하루 종일 공부를 했다곤 한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J라는 친구를 사귀면서 게임을 접하게 되고 공부에 조금 소홀해지긴 했지만 말이다. 그래서 B는 J라는 친구를 사귄 것이 인생의 큰 실수라는 둥, J를 만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둥 얘기를 종종 하곤 한다. 워딩이 좀 쌔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이 때문에 나도 B와 다툰 적도 꽤 있다. 지금은 그러려니 한다. 예전보단 많이 나아졌기도 하고 말이다. 아무튼, 그래서 B는 좋은 대학에 들어갔다. 그리고 나는 이 B라는 친구와 성격이나 생각하는 것이 상당히 반대되기 때문에 이로 인해서 다툰 적도 꽤 많다. 그 과정에서 B가 말하는 바보라는 둥, 멍청하다는 둥, 머리가 나쁘다는 둥 악담을 듣기도 했었다. 조금 기분이 나쁘기도 했지만 나는 위에서처럼 생각했기 때문에 딱히 반박할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그리고 B와 친구가 된 지 약 6년인 이틀 전, 나의 MBTI 검사가 끝난 뒤 B에게 "내가 봤을 때 얘는 머리가 좋은 것 같다" 라는 얘기를 들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아마 그 친구는 몰랐겠지만 굉장한 쾌감이 몰려들었다. 애써 담담한 톤을 유지하며 왜 그렇게 생각했냐고 이유를 물었다. 그 친구는 "내가 하지 못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고 답했다. 그리고 "나는 내 자신이 똑똑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는데, 너는 똑똑한 것 같다. 아마 공부를 열심히 했으면 대단히 성공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뭔가 쓰고나니 상당히 낯부끄럽다. 자만하고 자화자찬하는 것 같은 느낌도 나서 부끄럽다. 여전히 나는 내가 똑똑하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다만, 주변에서 똑똑하다는 얘기를 곧잘 듣곤 한다고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무튼, 마지막으로 B의 검사를 해주었다. 이 친구는 INTJ, S에서 N으로 변경되었는데, 마찬가지로 퍼센트가 꽤 높게 나왔다. 이 과정에서 J와 의견이 엇갈리는 경우가 많았는데, 나는 뭐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B라면 이럴 것이라는 생각이 괜히 들어서 내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B는 확실히 J보다 내가 B에 대해서 더 잘 알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하곤 했다. 그럴 때도 기분이 꽤 좋았다. 내가 다른 사람을 잘 이해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친구로써는 J가 조금 더 편하고 취향도 잘 맞고 잘 놀지만,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고 나를 성장시키는 것은 B의 영향이 좀 더 크다고 생각한다. 마음에 안 드는 점도 꽤 있지만, 그래도 생각보다 괜찮은 친구고 나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많이 끼친다고 생각한다.

 

다음 네 유형에 대해서는 INTJ와 서로 보완하고 배울 수 있는 많은 잠재력을 제시한다. INTJ가 자신의 편협한 생각을 보충한다고 하면, 이들의 아주 다른 것으로부터 새로운 관점이 생겨나게 할 수 있다. 또 이때 서로를 알게 됐을 때 얻는 삶의 가르침이 굉장히 중요할 수 있다. 다만, 이들의 첫인상은 INTJ 입장에서 먼저 다가가게 만드는 스타일은 아니다.


나무위키의 INTJ 문서에는 ENFP와의 관계에 이렇게 적혀있다. B는 이 문장에 많이 긍정하였다. 내가 B 자신에게 새롭고 신선한 생각을 많이 던져주곤 한다고. 나 또한 이 내용에 많이 긍정한다. B는 원론적인 이야기를 종종 하곤 한다. 보통은 논쟁을 할 때 나는 내가 주장하는 바가 옳든 그르든 내 의견을 납득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B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특히나 내가 주장하는 바가 사회 통념에 반하는 경우, 원론적인 이야기를 이기기는 쉽지 않다. 이 친구가 자주 입에 담는 얘기가 있는데, 대충 "현실적으로 어려울지라도 항상 이상을 바라보라" 같은 이야기다. 이 말이 나오면 반박하기가 어려워진다. 그래서 내 의견을 내려놓고 B의 말이 옳다고 얘기하는 일이 종종 있다. 덕분에 다른 사람의 얘기를 좀 더 잘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고 생각한다. 이외에도 나에게 생각할 여지를 많이 주거나 나를 성장할 수 있게 해 준 사례가 꽤 있었던 것 같은데, 당장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쩌다보니 이야기가 굉장히 길어지게 된 것 같은데, 여하튼 친구들과 서로의 MBTI 검사를 해주는 것은 나에게 굉장히 유익한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솔직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고, 다른 친구의 성격에 대해서 더 깊이 알 수 있는 시간이었고, 친구들과의 관계에 대해, 나의 행동이나 사고 방식, 가치관 등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나는 아마 다시하게 될 일이 거의 없을 것 같지만, 다른 사람들도 해보면 분명 좋은 경험일 것이라고 생각한다.